AI가 해자를 먹어치우는 시대: 남은 해자는 뭐가 있을까?

최근 한 스타트업 대표와 술을 마셨다. "형, 우리 제품을 주말에 누가 그대로 카피했어요. AI로."(AI Eats Moats OnlyCFO's Newsletter의 글을 번역함)

그가 6개월 동안 개발팀과 밤새워 만든 기능을, 누군가 Claude에게 프롬프트 몇 줄 던지고 3일 만에 복제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UI/UX까지 거의 똑같았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세계 곳곳에서 기술은 더 이상 '해자(moat)'가 되지 못하고 있다.

Cursor의 CEO는 최근 "AI를 1주일 내내 돌려서 브라우저를 클론했다. 300만 줄의 코드가 만들어졌고, 작동한다"고 밝혔다. 과거 수십 명의 엔지니어가 몇 년 걸려 만들던 것을, 이제 AI 토큰 비용만 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기술이 더 이상 해자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회사를 지켜줄 것인가?


1. 해자의 본질: 깊이와 폭

중세 시대 성을 생각해보자. 성을 둘러싼 물로 가득 찬 도랑, 그것이 해자다. 적군이 성을 공격하려면 이 해자를 건너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성 안의 방어군이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비즈니스에서 해자는 경쟁자가 쉽게 따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장벽'을 의미한다. 워렌 버핏이 평생 강조한 개념이기도 하다. 해자가 강한 회사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 지속 가능한 매출 성장
  • 높은 고객 유지율
  • 가격 결정력과 수익성 보호
  • 훨씬 높은 기업 가치

그런데 해자의 강도는 두 가지 변수로 결정된다.

해자의 깊이(Depth): 경쟁자가 얼마나 쉽게 당신을 복제할 수 있는가?
해자의 폭(Width): 고객이 그 차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image.png

과거에는 '기술력'이 해자의 깊이를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였다. 그런데 2026년 현재, 이 전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2. 기술이 해자가 되지 못하는 시대

어떤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최근 Y Combinator 출신 경쟁사가 자사 제품을 그대로 복제했다고 분노했다. 심지어 웹사이트의 커스텀 이미지와 콘텐츠까지 그대로 가져갔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답은 간단하다. Claude나 Cursor 같은 AI 코딩 도구에 "이 웹사이트를 똑같이 만들어줘"라고 요청하면, 주말 사이에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이 나온다.

과거 같으면 이런 식이었다:

  1. 프론트엔드 개발자 2명 (월 급여 800만원 × 2 = 1,600만원)
  2. 백엔드 개발자 2명 (월 급여 900만원 × 2 = 1,800만원)
  3. 디자이너 1명 (월 급여 600만원)
  4. 최소 3~6개월 개발 기간
  5. 총 비용: 약 1억 2천만원 ~ 2억 4천만원

하지만 2026년에는:

  1. 개발자 1명 (또는 창업자 본인)
  2. AI 코딩 도구 구독료 (월 2~5만원)
  3. 토큰 비용 (50~100만원)
  4. 총 비용: 100만원 내외, 기간: 1주일

이건 단순히 비용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복제 장벽이 사실상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AI 코딩 도구를 사용하는 개발자는 평균 생산성이 55% 향상되었고, 일부 단순 기능 개발은 80% 이상 시간이 단축되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효율 향상' 차원을 넘어,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이걸 받아들여야 한다. AI 도구들은 이를 엄청나게 쉽게 만들고 있고, 앞으로 더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이 주말 만에 복제될 수 있다면, 대체 어떤 해자가 남았을까?


3. 2026년에 남은 5가지 해자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딱 5가지 해자만 남았다:

1) Distribution (유통/배포)

2) Trust (신뢰)

3) Data (데이터)

4) Scale (규모)

5) Network Effects (네트워크 효과)

많은 사람들이 "속도(Speed)"를 해자로 얘기한다. 빠르게 실행하고, 빠르게 채용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 말이다. 물론 중요하다. AI 시대에 시간의 기회비용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속도만으로는 장기적 성장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좋은 예가 AI 기능 도입이다. "우리는 AI 기능이 있어요!"는 해자가 아니다. 당신의 경쟁사도 다음 주에 똑같은 기능을 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 시작하는 것이 해자는 아니다. 다만 해자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위의 5가지 해자는 모두 결국 더 강력한 Distribution 해자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 고객이 당신을 신뢰하는가? → 고객이 더 많은 제품을 구매하고 친구에게 추천한다.
  • 독점적 데이터를 보유했는가? → 고객이 더 많은 데이터를 보내고, 더 많은 잠재 고객이 접근을 원한다.
  • 여러 제품을 가진 대기업인가? → 신제품 추가가 쉽고, 다른 해자를 강화한다.
  • 네트워크 효과가 있는가? →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플라이휠이 작동한다.

최고의 유통은 많은 제품의 약점을 감출 수 있다.

최고의 제품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고의 유통을 가지고 시장에서 이긴다면, 그것은 혁신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실패하는 유일한 방법은 형편없는 팀이 계속해서 기회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배달의민족이 처음부터 최고의 앱이었을까? 아니다. 초기에는 버그도 많았고 UX도 불편했다. 하지만 그들은 '유통'에서 이겼다.

치킨집 사장님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가입시켰고, 소비자들에게는 '배달앱 = 배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후 쿠팡이츠, 요기요가 더 좋은 기능을 내놓아도 배민의 시장 지배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게 유통의 힘이다.


4. 숫자로 보는 진실: Distribution(실제 사용, 홍보) > Product

자, 이제 실제 데이터를 보자. 상장 기업들은 어디에 돈을 쓰고 있을까? 유통(Distribution)과 혁신(Innovation) 중 어디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할까?

고배수 기업들의 선택

가장 높은 매출 배수(Revenue Multiple)를 받는 기업들을 보면, 평균적으로 S&M(Sales & Marketing, 영업 및 마케팅)에 R&D(연구개발)보다 1.3배 더 많이 쓴다.

이것도 과소평가된 수치다. 왜냐하면 이 리스트의 많은 기업들이 R&D에 쓰는 돈도 사실은 유통 추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 시간을 플라이휠 구축, PLG(Product-Led Growth, 제품 주도 성장) 등에 쓰는 것 말이다.

빠른 매출 성장을 기록하는 기업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S&M에 R&D 대비 더 많이 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과도한 유통 투자는 위험 신호

S&M 대비 R&D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들을 보면, 훨씬 낮은 밸류에이션 배수(3.4배)를 받는다. 전체 평균(6.8배)의 절반 수준이다. 이 10개 기업은 평균적으로 R&D 1달러당 S&M에 2.5달러를 쓴다!
→ 대신 너무 과도하게 S&M만 쓰면 실력 없고, 돈으로 고객을 사고 있는 나쁜 기

이런 일은 보통 성장이 약해지거나, 회사가 필사적으로 성장하려다 제품을 뒷전으로 미룰 때 발생한다.

좋은(나쁜?) 예시가 Expensify다. 최근 시가총액의 상당 부분(약 1,200만 달러)을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F1 영화에 썼다. 6개월 전에 개봉한 영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료 링크드인 게시물이나 트윗 하나가 그 영화보다 더 많은 매출을 만들었을 거라 확신한다.

신뢰받는 브랜드의 올바른 유통이 이상적인 잠재 고객을 만날 때, 마법이 일어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돈을 태우는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유통을 추구하며 끝없이 돈을 태우고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계산해보자.

예시: 스타트업 C사의 사례

  • 연 매출: 100억원
  • R&D 투자: 20억원 (매출의 20%)
  • S&M 투자: 50억원 (매출의 50%)
  • S&M/R&D 비율: 2.5배

이 회사는 신제품 개발보다 기존 제품을 파는 데 2.5배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매출이 늘 수 있지만,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면 결국 고객이 이탈한다.

이상적인 균형은?

  • 초기 단계(매출 250억 이하): R&D ≥ S&M (제품 개발에 집중)
  • 성장 단계(250억~1,000억): S&M ≈ R&D × 1.3~1.5 (유통 확대)

성숙 단계(1,000억 이상): S&M ≈ R&D × 1.5~2.0 (시장 지배)


5. 회사 단계가 중요하다

ICONIQ의 데이터에 따르면, 연 매출 2,500만 달러(약 325억원)를 넘어서면, 기업들은 혁신보다 유통에 더 많은 돈을 쓰기 시작한다.

AI가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품이 어느 정도 괜찮아야 팔 수 있다... 물론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제품을 판매한 영업 담당자들을 알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매출이 많아질수록, (절대 금액으로) 혁신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이다:

해자는 정적이지 않다. 항상 줄어들거나 커지고 있다.

AI가 당신의 해자를 갉아먹고 있다. 기술은 당신의 해자가 아니다.

당신의 더 지속 가능한 해자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고, 거기에 두 배로 투자하라. 장기적으로 승리하려면 깊고 넓은 지속 가능한 해자가 필요하다.


6. 투자자와 경영자에게 주는 시사점

나는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이 패러다임 전환을 예상했다. 그래서 내 포트폴리오에서 '순수 기술주'의 비중을 줄이고, '유통 파워'를 가진 기업들의 비중을 늘렸다.

예를 들어, 같은 AI 관련주라도 기술 그 자체를 파는 회사보다는, AI를 활용해 고객 접점을 넓히는 플랫폼 기업에 투자했다. 결과는? 지난 2년간 내 수익률은 지수 대비 20%p 이상 아웃퍼폼했다.

이건 자랑이 아니다. 단순히 '해자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걸 이해했을 뿐이다.

투자자라면

  1. 기술 차별화를 강조하는 기업은 경계하라. "우리만의 독자 기술"은 2026년에는 더 이상 해자가 아니다.
  2. 유통 채널과 브랜드 파워를 보라. 고객이 왜 이 회사를 선택하는가? 제품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이미 익숙하고 신뢰하기 때문은 아닌가?
  3. S&M과 R&D 비율을 체크하라.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회사는 위험하다. 균형이 핵심이다.
  4. 네트워크 효과를 찾아라. 사용자가 늘수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비즈니스 모델인가?

경영자라면

  1. 기술 개발에만 올인하지 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 그것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초기부터 유통 전략을 고민하라. 제품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불완전한 제품이라도 고객 피드백을 받으며 유통 채널을 구축하라.
  3. 신뢰를 쌓아라.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관된 고객 경험, 투명한 소통, 약속 이행이 누적되어 신뢰가 된다.
  4. 데이터를 모으고 활용하라. 고유한 데이터는 AI가 복제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자산이다.

7. 마치며

"제품 복제당한 게 화가 났는데,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우리한테는 2년 동안 쌓은 고객 데이터와 신뢰가 있잖아요." 정확한 판단이다.

AI가 해자를 먹어치우는 시대, 우리는 새로운 룰을 배워야 한다.

기술은 더 이상 해자가 아니다. 주말에 복제된다. 하지만 유통은 복제할 수 없다. 신뢰는 복제할 수 없다. 수년간 축적된 고객 데이터는 복제할 수 없다.

워렌 버핏은 수십 년 전에 이미 말했다. "넓은 해자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라."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무엇이 해자인가'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을 뿐이다.

결국 세상은 복리의 법칙이 지배한다.

오늘 쌓은 작은 신뢰가, 1년 후에는 브랜드가 되고, 5년 후에는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해자가 된다. 반대로 기술에만 의존했던 회사는, AI의 발전 속도 앞에서 해자가 하루아침에 증발한다.

어렵다..어려워 사실 내 수준에서 바이브 코딩은 후단의 백엔드부터 이런 관리가 어려웠는데, 실제 개발자들이 있는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제 기능의 단순 구현 자체는 꽤 쉬워진 것 같다.

최근에 V-Chart (4분기 실적의 합)를 공유해주는게 아이투자였나? 어디였나 유료로도 봐야헀는데, 최근에 AI랑 실적 내가 꾸준히 모아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나 혼자 보는 용도로는 매우 쉽게 완성되었다.

대신 내가 제공하는 V-Chart는 다른 기능이 없고, 다양한 커뮤니티나 분석이 없어서 가치가 낮겠지만, 기능자체는 복제가 쉬워진 세상이다.

다만 우리는 유튜버, 인플루언서라는 사람이 좋고, 데이터의 신뢰성이 좋기 때문에 떠날 이유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스타트업 또는 개인 사업 레벨에서는 더더욱 SNS를 통한 Distribution이 중요해질 것 같다.

Read more

다카이치의 압승과 일본의 미래

다카이치의 압승과 일본의 미래

니케이의 폭등과 토픽스 사상최고치 경신등, 일본의 주식시장은 활황장이다. 거기에 더해 엔화 약세와 일본국채의 장기금리는 변동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자민당은 316석이라는 압도적 승리로 다카이치 정부에 엄청난 힘을 싣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왜 다카이치에게 아베 정권보다 더 큰 힘을 보태주었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독자분들과 탐구코자 한다. 1.

By growth&grind
투자는 멘탈이다 -1 (회복탄력성)

투자는 멘탈이다 -1 (회복탄력성)

회복 탄력성 : 복리를 지켜내는 심리적 자본 최근 회복탄력성에 관한 책을 읽으며, 투자에 적용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회복 탄력성을 "힘든 일을 겪어도 다시 일어나는 능력"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책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한다. 회복탄력성은 고통을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방향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이 문장을 읽는

By growth&grind
투자 아이디어 노트 : 반도체 사이클과 장비주 그리고 디아이티

투자 아이디어 노트 : 반도체 사이클과 장비주 그리고 디아이티

1. 반도체 사이클과 장비주의 위치 반도체 산업은 구조적으로 사이클성과 구조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산업이다. 현재 반도체 시장은 AI 인프라 수요확대, HBM 성장, 선진 공정 확대라는 구조적 트랜드와 사이클적 캐팩스 확장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26년에도 성장 전망이 우세하다. WSTS는 26년 시장 규모가 전년대비 26% 증가한 약 1조달러의 수준을 기록할

By growth&grind
화폐의 신뢰가 무너질 때 : 인플레이션(2) - M2 증가 시나리오

화폐의 신뢰가 무너질 때 : 인플레이션(2) - M2 증가 시나리오

저번 글에 이어서, M2 증가 시나리오를 풀어보고자 한다. 앞서 인플레이션의 개념과 독일의 사례를 통해 확인했듯, 문제는 "돈을 찍느냐"가 아닌 어떤 조건에서 통화와 신용이 다시 작동을 하냐? 가 관건이다. 연준은 양적긴축(QT)을 종료하고, 만기도래 국채를 롤오버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주택저당증권(MBS) 상환분은 단기 국채로 재투자되며, 그 목적은 명확하다.

By growth&gr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