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인간 조건: 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벤 톰슨)

AI 시대의 인간 조건: 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벤 톰슨)

여기도 AI 저기도 AI - 인간은 외롭다

요즘 블로그를 쓸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AI가 내가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주제를 끊임없이 제공해준다. 최근 내가 쓴 글들의 초안은의 절반 이상이 AI 자체가 써준 거다.

내용도 AI, AI, AI 투성이.. 다들 "요즘 ChatGPT가 투자 리포트도 써주던데, 계속 블로그 쓸 이유가 있어?" 순간 뜨금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누군가 Claude에게 "SK하이닉스 HBM 전략 분석해줘"라고 물으면, 그럴듯한 답변이 30초 안에 나온다. 미래가 걱정되긴 한다.

벤 톰슨의 글이..그래도 희망을 주는 것 같아서 정리+생각을 더해보았다.

McKinsey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 시장은 2025년 약 1,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콘텐츠 생성 분야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세그먼트 중 하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새로운 질문이 아니다. 구글이 처음 나왔을 때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왜 신문을 사?" 그리고 많은 신문이 실제로 망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매체들도 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그리고... 개인 블로거들.

Pew Research Center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86%가 뉴스를 디지털 기기로 소비하지만, 구독형 뉴스레터와 개인 블로그에 대한 신뢰도는 오히려 상승했다. 왜일까?​

답은 '커뮤니티'다.

​과거로 돌아가 보자. 한때 출판은 국가를 만들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신문이 미국 독립 운동의 구심점이 됐고, 각국의 신문들이 국민 정체성을 형성했다. 사람들은 같은 신문을 읽으면서 같은 이슈를 토론했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AI는 이와 정반대다.

내가 ChatGPT에게 "최근 반도체 산업 트렌드"를 물으면, 내 관심사와 이전 대화를 기반으로 맞춤형 답변을 준다. 당신이 같은 질문을 하면 다른 답을 받는다. 이건 일을 처리하는 데는 훌륭하다. 하지만 공통의 기반(common ground)을 만드는 데는 쓸모없다.

"알고리즘 기반 개인화는 효율성을 높이지만, 공유된 현실(shared reality)을 파괴한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는데, 즉 우리 모두가 파편화된 개인 비서와만 놀고 있는 것이다.

​내 블로그를 읽는 수천 명은 모두 같은 글을 읽는다. 같은 논리를 따라간다. 같은 농담에 웃는다. 그리고 댓글란에서 서로 토론한다. 우리는 공통의 경험을 공유한다. 이게 커뮤니티를 만드는 토템 폴(totem pole) 역할을 한다.

​성공적인 출판물들은 바로 이 지점을 이해했다.

뉴욕타임스는 단순히 뉴스를 파는 게 아니라 '뉴욕타임스를 읽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판다. 월스트리트저널 구독자들은 같은 경제 이슈를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들은 서로 모르지만,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

The New York Times의 구독자 수는 2020년 600만 명에서 2024년 1,000만 명을 돌파했다. CEO Meredith Kopit Levien은 "우리는 뉴스를 파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말했다.

​AI는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 수 없다.

아니, 구조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AI의 가치 제안은 정확히 그 반대다: "당신만을 위한, 당신에게 최적화된" 답변.

​그래서 나는 낙관한다. 광고 기반 매체들은? 대부분 망할 것이다. 아니, 이미 망하고 있다. AI가 구글을 대체하든, 구글이 AI를 써서 링크 위에 답변을 제공하든,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하지만 커뮤니티를 만드는 콘텐츠 제작자들은? 살아남을 뿐 아니라 번창할 것이다. 에세이든, 팟캐스트든, 비디오든, 사람들이 모여서 공유할 수 있는 '인공물(artifacts)'을 만드는 사람들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최적화된 정보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너도 그거 봤어?"라고 물을 수 있기를 원한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이 욕구는 채울 수 없다.

이제 AI 시대 사람에 대한 비관론과 그 반박에 대해서 살펴보자

22세기 자본 - 자본이 신이되는 사회

최근 팟캐스터 Dwarkesh Patel과 경제학자 Philip Trammell이 쓴 글이 화제가 됐다. 제목은 "Capital in the 22nd Century". 토마 피케티의 유명한 저서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피케티는 2013년 『21세기 자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으면, 부의 불평등은 계속 심화된다. 부자는 더 많이 저축하고, 더 높은 수익률을 얻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대공황 같은 충격이 와야만 이 불평등이 리셋됐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피케티가 틀렸다고 반박했다. MIT의 경제학자 Daron Acemoglu(최근 노벨경제학상 수상)는 "자본과 노동은 서로 보완재이며, 자본 축적은 자기 교정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과 노동은 서로 보완재다. 망치가 아무리 많아도 그걸 쓸 손이 없으면 망치의 가치는 떨어진다. 반대로 손이 많으면 망치의 가치는 올라간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자본이 축적될수록 금리는 내려가고(자본 수익률 하락), 임금은 올라간다(노동 가치 상승). 자기 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Patel과 Trammell은 이렇게 말한다.

"피케티는 과거에 대해서는 틀렸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맞을 것이다."

왜? AI와 로봇이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 자기 교정 메커니즘이 붕괴하기 때문이다.

Bureau of Labor Statistics의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GDP의 약 66%는 노동 소득이고, 33%가 자본 소득이다. (출처: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Labor Share of GDP")

그런데 AI가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로봇은 임금을 받지 않는다. 로봇을 한번 만들면... 아니, 로봇이 스스로 로봇을 만들면, 한계비용은 0이다.

결국 GDP의 100%가 자본 소득이 되고, 노동 소득은 0%가 된다. Goldman Sachs 또한 "생성형 AI가 전 세계적으로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 무한한 자본 소득을 소유할 사람은? 전환기에 가장 부유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정확히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저축하고 장기 수익률을 극대화한 사람들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결국 모든 것은 극소수가 소유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방법을 찾을 것(벤 톰슨)

나는 이 논리를 이해한다. 그치만 회의적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 세상은 정말 멋질 것 같은데?

AI가 모든 걸 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음식, 옷, 집, 의료, 교육... 심지어 개인 비서까지. 로봇이 인간보다 모든 일을 잘한다면, 모든 사람을 위해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럼 로봇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미 충족됐는데?​

둘째, 그 시나리오는 비현실적이다.

AI가 정말로 그 정도 능력을 갖게 된다면, 과연 인간이 여전히 AI를 '통제'하고 '소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2025년 기준의 재산권 개념이 그대로 유지될까?

스탠퍼드 대학의 AI 안전성 연구자 Stuart Russell 교수는 "초지능 AI가 출현하면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의 법률 및 재산권 체계는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AI 종말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풍요의 시대가 오면서 재산권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이해 자체가 크게 바뀔 것이다.

셋째, 역사는 인간의 적응력을 보여준다.

농업혁명을 생각해보자. 신석기 이전에는 0%의 인간이 농사를 지었다. 1810년 미국에서는 81%가 농부였다. 그리고 200년 후인 지금? 1%만 농사를 짓는다.

Our World in Data의 분석에 따르면, 1810년 미국 노동력의 81%가 농업에 종사했으나, 2020년에는 1.3%로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1인당 GDP는 30배 이상 증가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했다. 그런데 인간은 손 놓고 있었나?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일을 만들어냈다. 공장 노동, 사무직, 그리고... 팟캐스터. 30년 전만 해도 팟캐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Patel과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만으로 돈을 번다. 인터넷의 공짜에 가까운 배포 네트워크 덕분에... 이런 개념 자체가 50년 전에는 상상 불가능했다.

미국에서만 팟캐스트 산업 규모가 4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연평균 27% 성장하고 있다. 즉 단순히 인터뷰하고 말하는게 직업이 되었다. 우리 모두 농업에서의 일자리를 잃고 오히려 행복해졌다.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이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낸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그 일이 생기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일의 가치는 이전 시대보다 훨씬 높다.

​인간은 인간을 원한다

로봇이 팟캐스트를 나보다 잘할 수도 있다. 회의적이긴 하지만.. 내 경험상, 인간적 요소는 필수불가결하다. 물론 나는 가끔 "음", "뭐", "그러니까" 같은 말을 하고, 사실을 틀리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버그가 아니라 피처다. 내가 하는 말은 정의상 나에게 고유하다. 그리고 그게 흥미로운 이유는 내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아니라.​

사실 내가 내 커리어(벤 톰슨)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는 AI와 정반대의 역학 때문이다.

지금은 개별 인간이 대규모 청중에게 도달할 수 있다. 나 혼자서 이 글을 쓰고, 수천 명이 읽는다. 반면 AI는? 개별화된 결과를 개인에게 제공한다. 네가 ChatGPT에게 묻는 것과 내가 묻는 것은 다르다. 답변도 다르다.​

Patel과 Trammell은 22세기를 이야기했다. 나는 21세기 초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 경험에 대한 욕구는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기계가 아닌 다른 인간을 중심으로 조직될 것이다.

HBR의 연구에서는 "디지털 시대에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공동체 경험에 대한 욕구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강해진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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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근본적인 예를 들어보자. 섹스.(오우야)

분명 인간처럼 생긴 로봇과 섹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압도적 다수의 인간이 여전히 다른 인간과 섹스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연애와 지위 게임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파트너를 찾고, 감동시키고, 유지하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경제가 될 것이다.​

로봇이 만든 완벽한 상품으로는 파트너를 감동시킬 수 없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완벽해도. 진정한 가치는 고유성과 불완전함에서 나온다.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OpenAI의 Sora가 반짝 흥행 후 앱스토어 순위 59위로 떨어졌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위에는 수십 개의 인간이 만든 소셜 앱들이 있다. 사람들은 AI가 만든 완벽한 콘텐츠보다 불완전한 인간의 콘텐츠를 원한다.

​(소라의 영상생성은 좋을지 모르나, 틱톡처럼 되고싶은 꿈도 있어보였는데, 아직은 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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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행복의 저주

사실 AI가 만들 풍요의 세계에서도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2008년 코미디언 Louis C.K.가 Conan O'Brien 쇼에 나와서 한 말이 있다. "지금 모든 게 놀라운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아."

그는 세 가지 기술을 예로 들었다. 스마트폰, 비행기 와이파이, 그리고 비행 그 자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 불평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난 72시간 동안 나는 느린 비행기 와이파이에 짜증냈고, 시차 적응에 불평했고, 아이폰 배터리 버그에 화를 냈다. 이 모든 게 너무 끔찍하다... 내가 어디서든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고,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고, 둘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기 전까지는.​

더 역설적인 건, 기술 혁신이 모두에게 혜택을 주면서 오히려 모두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내가 위스콘신 작은 마을에서 자랄 때, 세상에 부자들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10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는 것은 경이로웠다. 심지어 지위의 원천이었다. 내 친구 중 많은 수가 비행기를 한 번도 안 타봤으니까. 그게 내게 중요한 비교 대상이었다.

소셜미디어는... 아니, 정확히는 사용자 생성 콘텐츠 피드는 이 역학을 완전히 바꿨다.

이제 나나 다른 누구나 인스타그램만 열면 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전용기를 타고, 해변에 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 내 지루한 교외 생활이나 좁은 아파트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그 통찰을 얻는 수단 자체가 50년 전 세계 최고 부자도 상상 못했을 기술적 풍요인데도.

펜실베니아 대학은 "소셜미디어 사용이 늘어날수록 사용자의 행복도는 감소하며, 이는 상향 사회 비교(upward social comparison) 효과 때문"이라고 밝혔다. (요새 one sec 앱으로 SNS들을...제약하니 꽤 행복하다)​

다시 말해, Louis C.K.가 포착한 건 인간 행복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신경 쓰는 건 우리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해 어떤가다.​

그게 기술 역설을 만든다. 더 많은 능력, 더 광범위하게 분배된 능력은 절대적 기준으로 세상을 엄청나게 풍요롭게 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교 대상의 극적인 확장. 우리를 그 어느 때보다 비참하게 느끼게 만든다.

이게 바로 Patel과 Trammell이 걱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물질적 필요가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풍요의 대가가 다른 누군가가 더 많이 가졌다는 지식이라면? 그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인간적이다.

인간 조건의 양면성

여기서 흥미로운 모순이 발생한다.

만약 당신이 풍요의 세계에서도 인간성의 부정적 측면(질투, 비교)이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긍정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AI가 모든 일을 한다 해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을 원할 것이다.

정확히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의 경제가 생긴다.

질투의 가능성이 권위주의적 자본 통제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호감의 전망이 모두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 일자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다 해도.

팟캐스터 빼고는.​

내 생각에는 '우리가 AI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비대칭이 있다.' 부정적 시나리오(불평등, 질투, 비참함)는 너무나 생생하게 상상한다. 긍정적 시나리오(새로운 일, 인간 연결, 아름다움의 부활)는 너무 쉽게 무시한다.​

내 투자 경험을 돌아보면, 가장 큰 실수는 항상 비관에서 나왔다.
"이건 너무 비싸." "버블이야." "곧 무너질 거야."

때로는 맞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틀렸다. 그리고 틀렸을 때의 기회비용이 훨씬 컸다.​

왜? 복리 때문이다. 1%의 차이가 10년이면 10%가 되고, 20년이면 22%가 된다.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단순히 수익률의 차이가 아니다. 삶의 궤적 자체를 바꾼다.

JP Morgan에서 만든 보고서에서도 "장기 투자에서 가장 큰 적은 시장 변동성이 아니라 투자자의 비관적 성향"이라고 지적했다." 즉 숏돌이는 단기에는 벌어도, 버블의 타이밍만 잡다가 놓치게 하는 투자의 가장 적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자면.

​나는 AI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 믿는다. 그치만 그 변화의 방향은 아직 열려 있다.

Patel과 Trammell이 그린 디스토피아도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벤 톰슨) 그린 낙관적 미래도 가능하다.

​어떤 미래가 올지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인간 조건의 어두운 면(질투, 비교,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밝은 면(연결, 창조, 아름다움)도 함께 볼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게 더 정확한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 같아서다.

MIT의 미래학자 Andrew McAfee는 "기술의 미래는 결정론적이지 않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어떤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

그리고 솔직히, 팟캐스터로서는 그게 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추가적인 생각

벤 톰슨의 무료글은 뜰때마다 바로바로 읽고있는데 참 글을 맛있고 유익하게 쓴다. 22세기 자본도 읽어보고 정리해봐야 겠다.

내 생각은 비관과 낙관의 중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초기(~2030) : AI가 화이트칼라 중산층 직종의 일자리 위협은 현실화 될 것, 단순 업무 시간 감소로 나오는 경제성 효과 보다는 신규직원을 채용하지 않는 비용 절감 효과가 더 직관적임
  2. 중기(~2035?) : 에너지 관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피지컬 AI+로봇+무한의 에너지로 인한 풍요까지는 도달하진 못함. 대신 대부분의 사무직, 전문직 들이 대체되고 세미 디스토피아로 진입하여 갈등 격화
  3. 후기(2035~) : 에너지 관련 문제도 해결되고 핵융합, 우주 태양광 등등으로 에너지가 해방되고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비용이 거의 0까지 수렴->대부분의 일들이 전부 자동이라 인류는 놀기만 할 것? 즐겁게

이렇게 될지 어떤 루트로 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꿈의 크기가 크고 최고의 부자들이 하고자 하는 영역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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